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간이란 마치 강물처럼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. 어제 강원도에서 출발한 한강이 서울을 거쳐 내일 서해로 빠져 나가듯 말이다. 그러나 [footnote]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(라틴어: Sanctus Aurelius Augustinus, 354년 11월 13일 ~ 430년 8월 28일) 또는 어거스틴(영어: Augustin)는 4세기 알제리 및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신학자로,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다.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(Augustinus Hipponensis)라고도 불린다. 그의 이름을 라틴어 아우구스툼(Augustum)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‘좋은 징조의’ 또는 ‘덕망있는’이란 뜻을 담고 있다. 영어식으로 어거스틴(Augustine) 이라고 부를 때가 많고, 간혹 아우구스틴(Augustin)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. (wikipedia)[/footnote]어거스틴은 이와는 정반대의 시간관을 가지고 지니고 있었다. 즉 ‘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현재의 나를 향해 달려왔다가 과거로 역류한다’는 인식이었다.
[참으로 신실하게(이재철 지음) 중]
요즘 시간이라는 관념에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힘쓰고 있다.
너무 시간관념없이 살아온 자아비판적 성격의 반성과 더불어, 이참에 확실한 개념정립을 통하여 나에게 주어진 일정한 시간을 올바르게 배분하고 그 시간을 소진한 결과에 매순간 감사하며 새로운 시간 활용을 계획하기 위함이다.
위 문장은 아내가 추천해준 “참으로 신실하게”라는 책에 일부분인데, 지금 이 순간도 소비하고 있고, 소비했고, 소비할 시간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수동적인 관념보다 훨씬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관념을 제시하고 있다.
시간을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했듯이 그 흐름을 한가로이 감상하는 방관자가 되기보다 그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지 하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며, 이는 시간이 미래에서 현재의 나를 향해 달려왔다가 과거로 역류한다는 관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.
이 책에서 우리에게는 어제와 오늘이라는 우리말이 있지만 내일이라는 우리말은 없다고 한다. 그래서 내일은 한자어 내일(來日)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. 과거에 대한 반성과 과거 성과에 대한 자랑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한 미래계획에 대해선 익숙하지 않은 듯 하다. 있다고 해도 대부분 추상적이지 구체적이지 못하다. 어제와 오늘이 내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.
지금 이 글은 모두 나의 이야기이며 나의 반성이다…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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송선생님 이야기에.. 송선생님 반성인데.. 고개만 끄덕이다 갑니다. 블로그 포스팅 할 때 마케팅 운운.. PR 운운.. 브랜드 운운.. 이런거 말고 일기처럼 글 쓰고 싶을 때 있죠. 남들이 내 말을 알듯 모를 듯.. 들어줬으면 하기도 하고. 성찰 뒤에 시원한 답이라도 얻으셨음 좋겠네요. 아님 그냥 기분전환이라도. 🙂
요즘 “시간은 내 생명을 주고 산 기회”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. 어짜피 인생은 정해져 있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생명은 단축되잖아요. 바로 지금 이 시간도 생명이 단축되는 대신 맞이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…이 들지만 역시 맘대로 안된다는거…:)
어제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, 오늘과 내일을 위해 시간을 계획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은 얼추 맞지 않나 싶습니다. 우리도 민수 행님처럼…저 남양주 어디 허름한 비닐하우스에 성찰을 위한 합숙이라도…:)